[영화] Before Sunset

영화 Before Sunset이 시작되는 곳.
제시와 셀린느가 9년 후 만남을 갖게 되는 그 곳.
프랑스에 있는 택수가 찍은 사진을 올려봤다.
신기하게도 Serendipity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이 다음부터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고
다른 내 얘기들과 맞물려 자칫 지루한 글이 될 수 있기에 원치 않는다면 패스해 주시길.
오늘 Before Sunrise와 Before Sunset을 봤다.
주말에 보려고 아껴 놓았었는데 낮잠 자고 일어나서 나도 모르는 충동에 휩싸여 봐버렸다.
# Before Sunrise
처음 만나는 제시와 셀린느. 'milkshake'라는 단어로 쓴 시에 나온 구절처럼 그가 그녀를 이끌고 그녀가 그를 이끌기에 그들은 시작했다. 식당 칸에서 수다를 떨고 비엔나에 도착해서 예기치 않은 그들만의 하루. 그녀는 잠시 기차에서 내리는 걸 머뭇거린다. 그들은 전철위의 다리에서, 버스에서, 놀이공원에서, 묘지에서, 클럽에서, 웅장한 성당에서, 골목길의 벤치에서, 또 많은 곳에서 그들만의 추억을 만든다.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헤어져야 하는 그 순간. 두 남녀가 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그 순간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그들은 헤어져서 살며서 미소를 짓는다. 아마 다음에 만날 약속을 미리 생각하고 있는 걸까?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역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저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면 피곤해서 잘 걷지도 못했을테다. 설령 내가 죽도록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들 내가 버티지 못하니까. 그래도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하룻밤은 정말로 멋있었다. 부자들의 화려함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농담 섞인 얘기에,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 아기자기한 모습들에서 나도 모르게 영화에 빠져버린 것 같다.
셀린느는 골목길에 제시와 앉아 '관계'에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 그녀는 이런 말을 한다.
순간 머리가 끄덕여졌고 내 삶을 잠시 생각했다. 노력이 없었다면 여기에 없을 나. 그래도 뭔가에 노력을 기울였기에 22살의 내가 여기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 Before Sunset
A WALTZ FOR A NIGHT
Let me sing you a waltz
out of nowhere
out of my thoughts
Let me sing you a waltz
about this one night stand
you were for me that night
everything I always dreamt of in life
but now you're gone
you are far gone
all the way to you
island of rain
it was for you just a one night thing
but you were much more to me just so you know
I don't care what they say
I know what you meant for me that day
I just wanted another try
I just wanted another night
even if it doesn't seem quite right
you meant for me much more
than anyone I've met before
one single night with you, little
Jesse..
is worth a thousand with any-body
I have no bitterness my sweet
I'll never forget this one night thing
even tomorrow in other arms
my heart will stay yours until I die
Let me sing you a waltz
out of nowhere
out of my blues
Let me sing you a waltz
about this lovely one night stand
영화가 끝날 시점에 셀린느가 제시에게 기타를 치며 불러주는 자작곡.
셀린느가 제시를 생각하는 따뜻한 감정이 잔잔하게 내 마음을 스친다.
Before Sunrise보다 플레이타임은 짧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편보다 조금 더 좋았다. 비록 전편처럼 제시와 셀린느가 많은 곳에서의 추억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차 한 잔 하면서 그들이 나누는 그간의 이야기들이 나에겐 훨씬 매력적이었다. 9년 전보다 그들은 모두 야위었다. 제시는 이마에 깊은 주름살이 생겼고 볼살은 사라져 광대뼈가 보일 정도가 되었다. 셀린느도 머리를 뒤에 묶은 채로 가냘픈 몸이 돼 있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9년 전 하룻밤의 추억을 몇 년간의 공을 들여 책으로 낸 제시와 그걸 읽고 그를 만나기 위해 오는 셀린느. 그들의 마음 속에는 그 하룻밤의 정열적이고 아름다운 추억과 감정들이 그대로였다. 실상 그들은 결혼을 했고 제시는 자식도 있지만 그건 단지 형식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 제시는 이런 말을 한다.
셀린느는 겉으로 제시를 좋아하는 감정들을 표출하려 하지 않는다. 때론 농담으로 때론 화를 내며 마치 모든 걸 싫어하고 경멸하듯 말하지만 그녀가 그를 생각하는 마음이 그대로 묻어난다. 제시도 비행기를 놓치면서도 소중한 그녀와의 시간을 원한다. 그들의 겉모습은 예전처럼 앳되지는 않아도 그들의 마음만은 처음과 같다는 걸 난 느낄 수 있었다. 감동이었다. 어쩌면 단 하룻밤의 일들이었기에 더 그리울 수도 있었겠지만 그들의 눈빛에서 대화에서 그들이 9년 동안 해 온 모습들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쉽게도 처음 만난 후 6개월 후에 만나지는 못했지만 뒤늦게나마 그가 그녀를, 그녀가 그를 찾았고 제시의 행복한 웃음으로 영화에 끝을 맺는 결말이 내겐 또다른 시작을 말해주는 것만 같다.
# 정말 오랜만에 감동적인 영화를 봤다. 비록 내가 멜로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런 잔잔한 감동을 주는 영화는 몇 개를 보던 내 마음을 진동시킬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예전 생각들을 했다. 나도 한 때는 제시와 셀린느처럼 좋았을 때가 있었으니까. 그들처럼 처음 만난 그 날에 느낌을 받은 건 아니지만 시간이 흘러 잔잔한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행복한 날들을 보냈었던 게 기억난다. 제시처럼 말은 잘하지 못했지만 아는 것도 많지 않았지만 나도 그들처럼 그 따뜻한 것을 느꼈었다. 갑자기 제시가 말한 게 생각난다. '관계가 꼭 영원해야 하는 걸까?' 셀린느는 이 질문에 당연하듯이 아니라는 말을 한다. 인간의 수명이 한계가 있듯 당연히 관계도 영원성을 가질 수 없는 게 당연. 만남이 있었다면 이별이 있는 건 당연한 얘기라는 거다. 하지만 그 짧은 관계를 좀 더 멋있게 아름답게 만드는 게 또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일테고.
# 한 친구는 삶이 현재 진행형이기에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앞을 보고 달려가고 있고 한 친구는 과거를 잊지 못하고 쳇바퀴 돌 듯 얽매이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느 친구의 삶이 내 삶의 모범 답안이 될 수는 없지만 저 두 친구의 삶이 모두 이해가 된다. 그래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자신이 선택한 길에 적어도 후회는 하지 말라는 거다. 다시 후회하고 돌아갈 수는 있지만 다시 시작할 수는 있지만 그 동안에 받을 상처와 시간들이 아까워서라도 말이다.
p.s. 또 한 시간 넘게 글을 쓴 거 같다. 아닌가? 암튼 나머지 이야기들은 다른 글로 써 보고 싶기에 여기서 글을 마무리 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