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 미래를 논하는 일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오늘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100% 확신할 수 없는 지금, 먼 미래를 펼쳐보라는 것은 마치 커다란 천을 펴놓고 내게 무엇을 만들지를 결정하라는 것과 같다. 옷을 만들 수도, 간단한 손수건을 만들 수도, 혹은 다친 사람을 위한 붕대를 만들 수도 있는 것처럼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할 수 있는 것도 많기 때문에 아직까지 어느 길을 택해야 하는 지에 대한 대답을 섣불리 할 수가 없다.
5년, 10년, 20년 후의 내 모습과 같은 미래를 그려보라는 질문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듣는다. 나 역시 그랬고 그 때마다 내가 마치 전도유망한 사람인 것처럼 과장되게 기술하거나 전혀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얘기했다. 날 객관적으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어쩌면 성공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있는 엄청난 노력이라는 넘어야 할 산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도 쉽게 미래를 적어놓곤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수룩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미래를 확신하기 위해선 내 과거를 되돌아보게 된다. 지금까지 내가 무엇을 이뤄왔느냐는 과거의 흔적은 미래를 지탱하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분명 내 과거는 남들처럼 공부하고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는 곳을 향해 달렸다. 일류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일류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살았다. 하지만 뚜렷한 목표는 결여되어 있었고 그저 대다수가 하는 것에 대한 의미 없는 부러움과 동경심 때문에 내 현재는 갈수록 희미해졌다. 비록 관심 있는 분야가 있고 흥미로워 하지만 내가 진정 한계까지 열정을 쏟아 부어 파고든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냥 적당히 하고 넘어가거나 남들이 하는 정도로만 하면 괜찮겠다는 안이함으로 내 자신은 날 성숙시킬 기회를 매번 놓치고 말았다.
그렇게 해이해져 가는 시기에, 학업보다는 다른 활동으로 경험을 늘려보자는 생각을 했고 지난 한 해는 그런 의미에서 만족스러운 한 해였다. 남을 이끌어야 하는 리더 자리를 경험했고 단체 생활에서 중요한 것들을 깨달았고 다른 나라의 학교, 학생들을 보고 느끼고 내 스스로 생활비를 벌면서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덕분에 남들이 학업에 열중하는 동안 내 학점은 곤두박질 쳤지만 이 경험이 낳은 것들은 날 일으켜 세울 소중한 재산이 되었다.
이제 남은 건 경험을 토대로 내가 할 수 있는 한계치까지 학업이라는 것을 정복하는 것이다. 처음으로 공부라는 것에 ‘정복’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어졌다. 내 능력의 끝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아마 올 한 해가 앞으로 5년 뿐만 아니라 평생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며 따라서 5년 후를 그리는 건 적어도 한 학기가 지나고 나서 그려보고 싶다. 아직 5년 후를 그리기엔 내 1년이라는 시간을 그리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이젠 남들이 다 말하는 대기업의 수석연구원이 되고 싶다거나 뛰어난 박사가 된다거나 하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구체적으로 내가 프로가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제시하고 싶고 진정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말하고 싶다. 내게 5년 후의 모습은 그 이후의 문제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