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가지 생각들

일흔 - 두번째달 그리고 ...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5. 6. 23:50

# 뭐든지 이야기는 ... 이 중요하다. 원래 오늘 서울을 올라오는 게 계획이었는데 정말 보고 싶었던 Bard 공연 본다고 5월이 되자마자 부랴부랴 집으로 와버렸다. 물론, 가족 모두 어벙한 얼굴로 날 맞이해주셨지만 오랜만에 내 방에서 곤히 잠든 것 같다. 그리고 5월 2일, 홍대에서 10시 넘어서까지 버스킹을 하던 몇몇 공연팀들을 신나게 구경하고 돌아왔는데 이런... 옆옆집에서 불이 나서 독한 연기를 뚫고 밖을 뛰쳐나가야만 했다. 당시 집에 온 지 30분도 채 안 된 시간. 잠시 들이쉰 유독 가스는 지독했고 그 날부터 3일 동안 집에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유랑민처럼 돌아다니면서 모자란 잠을 보충하고 끼니를 해결하는 생활 속에서 내가 집에 온 건지 유랑 체험인 건지 도무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그리고 오늘 이제서야 집에서 제대로 된 잠을 잔다. 하하, 살다보면 참 별 경험을 다 한다.

집에 와서 할 일이 참 많다. 올 때마다 하는 독서와 책 수집은 물론, 갖고 싶었던 앨범도 구매해야 하고 친구들도 만나야 하고, 앞에 나열한 것들보다 더 중요한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해야 했는데 벌써 스쳐간 시간만 100시간이 넘는다. 답답할 따름이지만 남은 시간은 잘 쪼개서 그토록 하고자 했던 것들을 해야 겠다.

# 그래도 공연 후기니까 상세한 내용을 끄적여야 겠다고 생각해서 다시 손을 놀린다. 원래 버스킹이라는 게 정해진 시간이나 장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지만 7시부터 하신다고 해서 부랴부랴 늦지 않게 홍대 거리에 도착했다. 롤링홀 근처 거리에서 한다고 하기에 배회하고 있었는데 현보 대장님께서 어슬렁 거리시는 걸 발견, 아직 시작 안 했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덕분에 짬을 내어 빵으로 요기도 하고 공연 보면서 마실 물도 사서 졸래 졸래 따라다녔다. 30분 쯤 지났을까. 기억에 물고기 카페가 있던 골목에서 버스커들이 삼삼오오 모여 공연을 벌였다. 공연을 막 시작하기 전에는 직접 바드 팬이라고 말하고 사진도 찍고 그랬는데 어색한 분위기와 대장님의 엄숙함에 눌려 차마 말은 더 못하고 감상하는데 열중했다. 확실히 길거리에서 하는 소규모 공연인지라 사람은 적지만 훨씬 친밀감 있고 살아 있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잡음도 심하고 중간에 차나 사람이 지나칠 때면 연주에 방해되지만 그것마저도 마치 삶의 일부처럼 길에서 악기들의 소리와 함께 녹아드는 분위기는 버스킹만의 묘미라 여겨진다. 지나가던 발길들이 잠시 시간을 내어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들의 음악을 즐겨줄 때마다 왜 내가 다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충분히 콘서트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훌륭함을 지녔다.

공연 도중 같은 곡이 연주되는 틈을 타서 잠시 양윤정님의 노래를 들었다. 홀로 앰프에 기타와 목소리만을 가지고 노래를 불렀던, 나에게 자신이 성이 양이라서 양양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던 그 아가씨는 약간은 슬픈 듯하면서도 외로운 - 어쩌면 애닲은 - 노래를 건네고 있었다. 비록 사람은 가장 적었지만 3곡 정도를 들었던 그 순간만큼은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어쩌면 떼고 싶지 않았던 걸까. 잠시간의 아련함이 밀려왔음을 아무런 저항 없이 마음 속에서 느낀 시간이었다.

그 즈음, 경찰차 한 대가 들이닥쳤다. 연주하던 길거리에 주민이 신고를 한 모양이다. 먼저 경찰은 바드에게 연주 장소를 이동하라는 주의를 전했고 곧이어 나머지 뮤지션들도 경찰의 언질 후에 타의의 움직임을 보였다. 모두 다시 물고기 카페 앞에 모인 그들은 더 공연할 것인지에 상의를 했고 당돌하게도 난 다른 곳에서 또 공연해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용기가 가상해서였을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약간은 시끄러운 홍대 번화가 거리로 장소를 이동해서 또다시 버스킹을 시작하게 됐고 소중한 연주 감상 기회를 다시 한 번 갖게 됐다.

이동 후에 바드 공연에서는 장연주씨가 나와 아일랜드 전통 춤을 선사했다. 작은 판자 위에서 탭댄스 비스무레한 것도 하셨는데 역시 아일랜드 춤의 스텝은 무척이나 어려워보였다. 순간 박자를 바꾸고 발을 내미는 동작이 나 같은 굼벵이는 엉켜서 넘어질 것만 같았다. 춤을 추는 분들도 부끄러우신지 약간 상기된 얼굴이었지만 그렇게 선사해준 춤 덕분에 아일랜드 음악을 더 맛깔나게 다가왔다. 춤만 알았더라도 같이 덩실거리며 췄을텐데 아쉽다. 근데 아일랜드 춤을 가르쳐 주는 곳도 있을까.

불현듯, 양양 사진을 제대로 못 찍은 게 생각나 바드 공연 도중 얼른 달려서 양해를 구하고 한 컷을 찍었다. (리뷰 사진에서 V자 들고 계신 분) 음반이나 곡 작업하신 걸 얻었어야 했는데 차마 그것까지는 해달라고 하기가 뭐해서 감사하다는 말만 연신하고 돌아섰다. 인터넷에도 관련된 자료를 얻기가 힘든 걸 안 오늘, 아쉬움이 조금 진해진다.

바드 공연 후에는 정환씨와 고상지씨가 아르헨티나 탱고를 듀엣으로 연주했다. 그 중, 상지씨가 사용하던 악기가 특이했는데 반도네온이라는 아코디언과 흡사한 악기였다. 잠시 검색을 해보니 반도니온은 독일의 band가 만들고 그 이름을 따서 붙여진 악기라고 하며 고상지씨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면서 이 반도네온을 자주 연주하고 있다고 한다. 거기다 나랑 비슷한 출신의 공대생. 작년 모습과는 다른 이미지였다. 모던하고 젠틀한 이미지에서 보헤미안적이고 수수하며 말투에선 이웃집 누나 같은 모습이 그 날 남은 이미지다. 웃는 모습과 아기자기하게 싸인해주던 모습이 아직도 인상 깊다. 친히 이름도 물어봐주시고 정성스레 적어주신 것도 고마웠다.

연주하던 곡들은 탱고였지만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탱고와는 다르게 굉장히 섬세하고 음울하며 우수에 젖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듣고 있던 나는 탱고라고 하지 않았으면 슬픈 클래식 기타 연주곡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중간에 정환님이 실수하신 게 문득 떠오른다.

공연 도중에 정환님께 공연 후 피크를 선물로 달라고 했는데 그만 피크가 부러져서 부러진 피크를 전달받았다. 그래서 다음에는 제대로 된 피크 받으려고 벼르고 있다. 대신 싸인 CD 두 장 - 정확히는 누나가 전에 받은 CD까지 총 세 장의 CD로 위안을 삼는 중이다. 가수던 그룹이던 한 앨범을 세 장 사 본 것도 이 날이 처음 있는 일이다. 그만큼 공연이 좋았고 오히려 이보다도 더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아깝다기보단 수지 맞았다는 생각과 그들에게 느끼는 고마움이 더 크다.

주저리 늘어 놓은 만큼 즐겁고 소중한 추억이었고 다음에도 한 자리에서 이들을 함께 볼 수 있는 커다란 행운이 오길 바란다. 하아, 내 욕심 같아선 양윤정씨랑 고상지씨 인터뷰하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