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있는 기억

[책]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phychic 2007. 4. 2. 10:08
# 얼마 전 영화로 개봉한 향수. 책으로 나온지는 5년이 넘었는데 이제서야 읽었다. 광적인 한 수집가 이야기. 정상 사람들과는 다른, 불완전함과 완전함을 동시에 가지고 사는 그르누이. 모든 이야기는 향기, 냄새라는 제재를 가지고 시작한다. 그의 출생에서 살아오는 과정, 그의 죽음까지 일련의 과정들을 향이라는 특이한 소재를 바탕으로 묘사하고 있다. 거기다 그르누이 자신이 가진 향에 대한 천재성이 과도한 인간의 집착을 보여주기도 한다. 읽으면서 최근 읽었던 소설 중에는 가장 신선한 느낌이었다. 사람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좋은 냄새, 향기를 묘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 터인데 말이다. 가장 일상적인 오감 중에 하나지만 잡히지도 않고 체계화 시키기도 어려운 감각적인 부분을 서술했다는게 대단하다. 거기다 시시콜콜 듣는 평범한 해피엔딩이 아닌 지나친 목적성과 그에 걸맞는 결말은 책을 닫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정당한 이유를 갖게 해줬다.

아쉬웠던 점은 향기라는 것에 대해 문외한인 나로서는 수많은 향기들에 대해 직접 느껴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야외에서 맡는 꽃향기 하나 제대로 구분짓지 못하는 내게 수십가지의 향기들은 과도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차라리 책에 몇 가지 잘 나오는 향기에 대한 샘플이 들어있었다면 책의 몰입도가 한층 높아졌을거라 본다. 당연히 실제로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알지만.

우리도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주변 냄새를 느낄 수 있다. 순응 반응 때문에 잠시뿐이지만 자각한 상태에서는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기숙사 냄새, 옷장 냄새, 내 비누와 샴푸 냄새, 치약 냄새, 화장품 냄새 등등. 재밌는 건 나도 주인공처럼 내 체취를 맡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태어날 때부터 가졌던 체취. 내가 가진 나만의 독특한 냄새일텐데 난 아무리 맡아도 비누 냄새만 난다. 그래도 난 체취가 있긴 한 모양이다. 분명 누군가 나에게서 향이 난다고 말했으니까.

p.s 이상하게도 독일 작가들이 쓴 작품들은 이런 색다른 소재나 주제들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거 같다. 많이 읽어본 건 아니지만 읽어 본 작품들의 거의 대부분이 이런 특별한 느낌을 가졌다. 약간의 환상적인 느낌을 좋아하는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