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오만가지 생각들

서른아홉 - 기숙사 생활 시작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3. 7. 23:04
# 집에서 2달이 넘는 긴 휴식기를 마치고 오늘 기숙사로 돌아왔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그동안 즐거웠던 가족과의 생활과 미처 잘해드리지 못한 내 모습들이 교차하면서 잠시동안 감상에 젖어 있었다. 고마운 가족들. 정말 그 분들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음을 잘 알지만 항상 부족했던 내가 못내 죄송스럽다. 가족들 생각이 지나가면 한 학기 동안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연달아 뒤따르면서 걱정이 시작된다. 함께 편하게 얘기할 룸메이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떳떳하게 대학생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기에 한 쪽 마음이 계속 무겁고 벅차다. 자신에 대한 믿음에 물음표를 그릴 때마다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깨닫는다. 가끔 코 끝 찡한 감정 때문에 한참을 멍하게 바라볼 때도 있다.

기숙사 생활은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는 일주일 중 5일 동안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고 주말에는 집에 다녀오는 방식의 등하교였다. 그 때는 자율적이기보다는 사감 선생님 아래 되도록 규칙적이고 바른 생활을 하도록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교 기숙사 생활은 이보다는 훨씬 자율적이다. 사감 수칙만 어기지 않는다면, 아니 어겨도 걸리지 않거나 묵인될 정도의 것이라면 충분히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룸메이트 생활이기 때문에 룸메이트와 얼마나 문제없이 잘 지내느냐도 중요하지만 집에서 자신의 방이 아닌 나만의 공간이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면 대학 생활의 기숙사는 정말 큰 자유를 얻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런 대학교 기숙사 생활에서는 자신의 의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대학생이기 때문에 자신을 바른 길로 인도해줄 친절한 안내원은 내 옆에 없다. 자신이 알아서 공부며 학업 생활, 취미 활동, 갖가지 생활 등에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 난, 4년 내내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 마음 잡고 열심히 기숙사 생활을 한 적도 있지만 연애나 학생 활동 등에 쉽게 무너졌고 때로는 룸메이트와의 생활을 맞추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도 생겼다. 대학 입학 당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유학 가겠다고 생각했던 모습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이렇게 난 9학기 째 학교를 다니는 졸업 유급생이 된 신세다.

그래도 이번 학기는 내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재수할 때도 그랬지만 내가 한 눈 팔 다른 것들이 없기 때문에 미진했던 공부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을 수 있을 것이다. 기술고시 준비와 더불어 대학원 준비도 해보고 회의를 느꼈던 내 전공에 대한 매력을 찾는 좋은 기회인 만큼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싶다.

새로 들어온 기숙사는 아직 방정리가 덜 된 상태다. 이미 살고 있는 룸메이트의 짐과 생명과 엠티 짐으로 분주하며 쓸데없는 잡동사니로 너저지분하다. 의자도 없어서 내일 사감실에서 가져와야 할 참이다. 청소도 한 지 오래라 생각보다 많이 더러운 느낌도 든다. 내일 짐이 오기 전에 깨끗이 청소를 하고 짐을 풀어야겠다.

기숙사 오자마자 체육관에서 농구를 한 경기 했다. 운동을 너무 안해서 온 몸이 뻐근하고 땡긴다. 공부에는 체력이 첫째인데 이러다가 픽 쓰러지면 누구한테 연락하나. 보약 먹은 효과는 날런지 모르겠다. 틈틈이 운동해서 하루 10시간 공부는 무난히 할 수 있도록 해야지 안 그럼 죽도 밥도 안 될 듯. 운동하고 시간이 늦은 바람에 시장에서 샤워용 슬리퍼 하나를 사고 저녁 식사를 했다. 가게에서 혼자 밥 먹는 거 이젠 익숙한가 보다. 어색하지도 않고 불안하지도 않고 맛있게 먹었다. 혼자 와도 기분 좋게 밥을 주는 아주머니에게 감사의 인사도 드렸다.

오늘은 이렇게 평범한 하루였다. 누나가 해 준 아침을 먹고 어머니께서 짐 싸는 걸 도와주신 오전. 그리고 조심히 내려가라고 통화했던 아버지. 이 세 가족을 위해서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자. 에이. 눈물이 다 난다. 정말 너무 고마운 분들이니까 꼭 열심히 해서 부끄럽지 않는 아들, 동생이 되자. 절대 쓰러지지 않아.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