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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가지 생각들

마흔일곱 - 톨스토이 '행복'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3. 16. 00:34
# 톨스토이라고 말하면 다들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러시아 작가다. '죄와 벌', '전쟁과 평화'와 같은 명작을 남기면서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의 대표적인 작가로 널리 알려져있다. 아쉽게도 톨스토이의 저런 유명한 책들을 읽어보지 못했다. 명작에 대한 스스로의 거부감 같은 것 때문에 집에 책이 있음에도 쉽게 손이 가질 않았다.

도서관에서 한 주에 읽을 교양 서적을 뒤적이다가 사이드 선반에 놓여있는 오래된 책을 하나 발견했다. 톨스토이의 '행복' 원제는 <Family Happiness>로서 허름한 책이어지만 부담없이 읽을 책일 것 같다라는 예감에 선뜻 빌려 읽게 됐다. 톨스토이의 톨 자도 제대로 모르지만 행복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어감 때문은 아니었나 싶다.

'행복'이라는 책은 매우 간단한 줄거리를 가진다.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와 세르게이 미하일리치가 겪는 사랑 이야기를 마리아의 일인칭 관점에서 서술한 이야기가 큰 맥락이다. 마리아(축약된 이름은 마샤)가 느낀 사랑이라는 감정이 변화하는 과정을 묘사하는데 아무런 기교 없이 깔끔한 문체로 서술해 가고 있었다.

마샤는 부모님이 두 분 모두 돌아가시면서 유모인 카냐와 동생인 소냐와 살아가며 아무 것도 하기 싫은 17살의 앳된 소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인 세르게이는 자신이 기대게 되는 좋은 버팀목 같은 존재로 시작해서 열정적인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다. 처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 그녀는 그와 함께 하길 간절함을 그에게 전하면서 이 둘은 결혼이라는 연장선으로 나아가게 된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소중한 기억이듯 마샤 자신에게도 커다란 행복임을 보여준다. 특히, 부모님이 없는 생활 속에 빛처럼 자신을 밝혀주는 그, 세르게이를 만나면서 느끼게 되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정말 순수한 사랑이었다. 사회 생활이 전무했던 마샤에게는 때묻지 않는 순수함으로 열정적인 사랑을 시작한 것이다. 우리 모두가 처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때처럼 말이다. 아마도 평생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 남는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아마 이런 느낌, 감정들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마샤는 너무 젊었다. 17살. 정작 사회에 대한 아무런 것도 알지 못한 채 결혼 생활을 시작해도 행복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던 그녀였지만 2달이 지나면서 새로운 생활에 대한 동경이 생겼고 그렇게 사회를 접하고 경험하게 되면서 예전에 느꼈던 소중한 사랑의 감정을 점차 잃어가고 만다. 아이를 낳고 노력도 해보지만 멀어져만 간다고 느끼는 그를 바라보면서 마음 아파하는 그녀는 끝내 다시 원래의 고향으로 돌아가 그에게 말한다. 예전에 느꼈던 감정을, 사랑을 다시 시작할 순 없는 건지 말이다. 하지만, 그는 당신을 사랑하지만 지금의 사랑은 그 때와는 다른 사랑이라고 말한다.

처음과는 다른 사랑. 결혼을 하면서, 사회에 나가면서, 가족이 생기면서 사랑은 그렇게 또다른 모습으로 변모함을 톨스토이는 말하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그런 사랑이 그 때마다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이라는 걸 일깨워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사랑을 진정 느낄 때 우리에게 '행복'이라는 것이 함께 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원제가 <Family Happiness>인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 비롯되진 않았을까.

톨스토이의 유명한 책들은 작가 자신이 38살 정도에서 집필한 책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이 책은 30세에 쓴 작가 초기 작품으로 다른 책과는 조금 다르다고 한다. 어떤 종교나 철학에 관련된 심오한 내용을 넣으려고 고민했다기보단 그 당시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삶에서 느끼는 소중함을 풀어나가려는 흔적이 엿보인다. 요즘처럼 현실이라는 벽앞에 퇴색되가는 사랑과 결혼, 행복이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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